세균은 지구상에서 종류가 가장 다양한 생물이다. 학자들은 세균이 400만~600만 종 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세균 전체의 생물량(어느 지역에 생활하는 생물의 총 중량)은 다른 모든 생물을 합친 생물량보다 커서 무려 지구 전체 생물량의 60%에 이른다. 세균 하나의 평균 무게는 0.0001mg이 채 안 되지만 지구상에 있는 세균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세균은 수적으로 가장 많은 생물일 뿐 아니라 적응력이 가장 높은 생물이기도 하다. 세균은 사해에서도, 남극대륙에서도, 성층권에서도, 구름 속에서도 발견됐고, 심지어는 다른 세균의 내부에서도 발견됐다. 세균은 끓는점을 넘을 정도로 뜨거운 심해의 온천수에서도 생존한다. 테르모필리아 아시도필룸이라는 종은 농축 황산에 해당하는 pH 1~2의 산도와 극단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별 문제 없이 생명을 유지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핵발전소의 냉각수조 안에서 사는 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는 인간 치사량의 1만 배에 해당하는 500만rad의 방사선 아래에서도 살 수 있다.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 정도로 추정된다. 지구에 최초로 생명체가 나타난 시기는 약 35억 년 전으로 잡는다. 지구에 최초로 태어난 원시생명체는 지금의 세균과 같은 모습이었다. 생명체의 최초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해안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작게는 지름이 1cm에서 크게는 사람 크기만 한 정도의 퇴적암석이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작은 원핵생물이 이만큼 커다란 바위덩어리로 커진 것은 세균이 단독으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무리를 지어 서로 돕는 집단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원시 생명체로 태어난 세균은 어떻게 지금까지 긴 시간 온갖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로 몇 가지 조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세균은 단독으로 살지 않고 집단을 이뤄 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기에 모든 세균은 하나씩 떨어져 독립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군집 또는 집락이라고 한다. 세균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삶의 조건만 맞으면 순식간에 증식하여 집단을 이룬다는 것이다. 영양분이 풍부한 환경에 놓인 세균은 20분마다 증식하여 세균 하나가 하룻밤 동안 10억 개체까지 증식할 수 있다. 만약 세균이 죽지 않고 영양분이 무한히 공급된다면 며칠만 지나도 지구상에 있는 세균의 질량 합계가 우주의 질량 전체를 초과할 것이다.
반면,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는 환경에 놓인 세균들은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활동정지 상태에 들어간다. 내생 포자라 불리는 것을 만들어내는 세균도 있다. 씨앗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일종의 생존껍질로 둘러싸인 세균은 여건이 좋아지면 껍질을 벗어버리고 활동에 들어간다. 세균은 이런 형태로 수백만 년 동안 생존할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은 1억 3,500만 년 된 호박(지질시대 나무의 진 따위가 땅속에 묻혀서 탄소, 수소, 산소 등과 화합하여 굳어진 누런색 광물) 안에서 활동 정지 상태로 발견된 세균이다.
다음으로 세균은 많은 수가 그대로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균집단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서로 다른 일을 맡아 분업을 하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세균 집단의 어떤 부분은 광합성을 수행하여 햇빛에너지를 분자 형태로 모으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세균은 쓰고 남은 것들을 폐기물로 축적하는 일을 맡는다.
세균은 이러한 여러 가지 성질을 이용하면서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능력을 극대화했다. 더욱이 세균은 세대 기간이 짧다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을 갖추었기에 적응 능력이 탁월하다. 인류는 돌연변이로 얻어진 능력을 집단 전체로 확장하는 데 수천 년이 필요하지만 세균은 단 몇 시간 만에도 가능하다. 세균은 서로 다른 종끼리도 접촉하여 유전자를 교환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 덕분에 항생제 내성 유전자는 종의 벽을 뛰어넘어 여러 세균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이런 생명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제약회사들이 내놓는 신종 항생제마다 곧바로 내성균이 출현하며, 새로운 항생제의 유효기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제약업계는 내성균과의 달리기 시합에서 죽자고 뛰지만 실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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