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힌디(67)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수제맥주(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CNN방송은 그가 미국 수제맥주 산업·문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며 '(수제)맥주의 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원래 기자였다. 1970년대 AP통신 중동특파원으로 레바논에 파견된 힌디는 술을 금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에 기사 마감 후 즐겨 마시던 맥주를 구할 수 없어 고민에 빠졌다. 어느 날 이집트 주재 미국 외교관이 집에서 몰래 만든 맥주를 맛본 힌디는 '맥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나' 깜짝 놀랐다. 1984년 미국으로 돌아와 틈틈이 홈 브루잉(맥주 자가양조)을 취미로 이어갔다. 그는 기자를 그만두고 1988년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창립했고 미국을 대표하는 수제맥주 업체로 키웠다.
아시아 첫 자매회사인 제주맥주와 사업 논의를 위해 방한한 힌디는 "한국 맥주 시장은 20년 전 미국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1990년대 미국 맥주 시장도 버드와이저, 쿠어스 등 대형 맥주회사에서 생산한 라거 맥주 일색이었어요. 미국 소비자들이 다양한 맛을 찾아 나서면서 수제맥주 붐이 일었습니다." 그는 "한국 맥주는 맛없다는 얘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맥주는 훌륭합니다.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 뿐이죠."
힌디는 상업 광고보다는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제안하는 '맥주 페어링'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자신의 맥주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는 창업 초기부터 연극·전시·공연 단체 모금 행사에 맥주를 기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맥주도 홍보하는 방식으로 유명했다. "와인만 음식과 궁합을 맞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와인보다 맛과 향의 폭이 훨씬 넓은 맥주야말로 어떤 음식과도 어울릴 수 있고 '궁극의 궁합'을 찾아낼 수 있죠. 맥주 빛깔이 옅을수록 생선이나 닭고기·오리고기 등 가금류와 잘 맞고, 진할수록 소고기·돼지고기·양고기 등 육류와 어울립니다."
그는 "수제맥주는 꼭 잔에 따라 마시라"고 조언했다. 병에 담긴 채로 마실 때보다 풍미가 훨씬 풍성해진다. "반드시 '헤드'(맥주잔 꼭대기에 형성되는 거품)가 형성되도록 따르세요. 풍미가 날아가지 않도록 보호해주면서 풍미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거든요." 맥주가 가장 맛있는 온도는 라거의 경우 0~1도, 에일은 10~13도 정도가 알맞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