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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에 훅간 청년 이야기 (펌글)

작성자: 졸부, 날짜 : , 업데이트 : hit : 1776, scrab : 1 , recommended : 0

격변하는 한국의 정치상황으로 인하여 먼 이국땅에서 사는 우리 교민들 까지 정치논쟁 그리고 이념 논쟁에 후끈 달아올라 있습니다. 머리좀 식히셔서 조금씩 자제하고 보다더 쿨하게 토론 하셨으면 하는 의미로 "룰루룰루라"는 닉넴을 쓰시는 어느 여성화가(교수?)의 개인 blog에 올린 그녀와 남친과의 첫 전투 이야기를 올립니다. 참고로 이 여화가는 사춘기 여학생딸이 있는 이혼녀이고 남자는 숫총각으로 글쓰기 동아리 회원인듯 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고 교민 서로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화해가 되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한방에 훅간 청년 이야기 (원제목:숫총각 따먹기)

 

만약 어떤 남자가 숫처녀를 꼬드겨 어쩌고 저쩌고 했다는 글을 쓴다면 무수히 날아든 돌멩이에 얼굴이 벌집이 되었거나 당사자인 숫처녀와 그 지인들로부터 성추행으로 고소 고발을 당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한 보복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여자가 숫총각을 침대로 유인해서 어쩌고 저쩌고 했다는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고 저쩌고가 아니라 숫총각을 따먹었다고 얘기 한다면?ㅋ 

작년 여름에 숫총각을 따먹은 일이 있었다. 따먹었다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고로 혹여 불특정 방문자가 글을 읽는동안 '숫총각을 따먹다'는 표현이 거슬려 못마땅하더라도 이해하기 바란다. 자라면서 남자에 대해 줏어들은 정보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숫총각은 찾아보기 힘들며, 동정을 지키지 않는 까닭에 여자의 순결에 더 집착한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그럼에도 거의 절대진리처럼 군림하던 말에 익숙해져 있었다.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10대였던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억울하고 분했지만 그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내가 만난 남자들이 숫총각이 아닌 사실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제기도 안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내게 숫처녀가 아닌 이유를 닥달하는 바람둥이 앞에서 미안해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숫처녀, 순결 같은 어휘에 눌려 이유없이 압박감을 느끼던 시절에서 벗어난 후 만난 남자들도 내가 숫처녀가 아닌 것처럼 당연히 숫총각이 아니었다. 이상할 것도 이상해할 이유도 없었다. 대중지성 2학기 무렵 어느 술자리에서 서른 살 미혼남인 펭귄도령이 숫총각이라는 사실을 전해듣기까지 숫총각이라는 낱말과 나는 아무런 연관관계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단정지은 채 살고 있었다. 그런데 펭귄도령이 숫총각이랜다. 꺄오! 토요일 수업이 끝나는 밤 10시무렵부터 시작되는 뒷풀이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멤버를 우리끼리 두주불사파라고 명명하고 있었는데, 사단이 벌어진 그날밤도 1차 2차 뒷풀이가 끝나고 전철이 다니는 시간까지 버티기하는 두주불사파 4명이 술자리를 사수하고 있었다. 

반쯤은 잠에 취하고 반쯤은 술에 취해 몽롱해진 상태에서 오간 이야기라 앞뒤 맥락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지만 니체가 어떻고 삶이 어떻고 연애가 어떻고 하는 수다 중에 키스 체험에 관한 말이 나왔던 거 같고, 그 와중에 펭귄도령이 키스 해본 경험이 전무하다는 말을 털어놓았던 것도 같다(긴가민가). 깜짝 놀란 나는 펭귄도령에게, "아니 그 나이에 키스도 안해보다니! 그럼 숫총각이겠네!" 했을 것이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거라곤 득달같이 닥달해대는 내 앞에서 얼굴이 새빨개진 펭귄도령이 숫총각이라고 털어놓는 장면뿐이다. 어떻게 해서 그 사실을 털어놓게 유도했는지 앞뒤 전후 사정은 정확치가 않으니 대략 줄임. 
 

그 나이에 숫총각도 있구나 싶어 신기한 생각이 먼저 일었다. 그리곤 이유를 캐묻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도 있었다면서 왜 총각이야? 여자친구랑 키스도 안해보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혹시 고자 아냐? 다연발로 쏟아지는 내 질문에 펭귄도령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거였다. 깔깔깔깔. 나는 아마도 계속 웃었을 것이고 계속 놀렸을 것이다(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네ㅋ). 하기사 숫총각이 숫총각이고 싶어 숫총각인가?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미욱해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키스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은 생각을 참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펭귄도령에게 이렇게 말했던 거 같다. "총각 딱지는 나같은 성숙한 누님에게 떼는 게 제일 좋아. 나같은 여자를 통해서 여자를 배운 다음 자기에게 잘 맞는 배필을 찾아 결혼하면 100점짜리 남자가 되는 거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펭귄도령이 워낙 착하고 성실한 보이스카웃 대원 이미지의 반듯한 총각인데다 나같은 아줌마랑 엮일 일은 두고두고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판에서 하는 그런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리는 없을 거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모두들 나처럼 지난밤에 뱉은 이야기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망각능력이 당연히 있을 거라고도 믿었다. 대중지성 같이 공부하는 학인들 중에는 처녀도 몇 있었는데 내 보기엔 그 중에서 펭귄도령에게 호감을 가진 처녀가 있어보였기 땜시 숫총각에게 아무리 껄떡거린들 내 차지가 될 확률은 제로라고 믿었다. 분위기 업 되다보니 어쩌다 나온 농담이었고 한바탕 웃자고 한 얘기였고 그리고 다음날엔 숫총각 앞에서 내가 했던 말을 여느 때처럼 간단하게 잊었다.
 

가능성 제로라는 현실적인 내 판단만 믿고 아무렇지 않게 수위조절 안하고 내뱉은 말들이 내성적이고 조신하며 감수성 예민한 펭귄도령에게는 전부 낚시질(혹은 유혹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어쩌랴. 모든 소통은 필연적으로 어긋나고 오해를 이해로 착각하고마는 게 대화의 이치인 것을. 내 나이가 펭귄도령보다 서너살만 연상이었어도 좀더 에둘러가는 방법으로 순진한 그 숫총각을 꼬드겼겠지만 나이뿐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조건이 전도유망하고 잘생긴 펭귄도령과는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펭귄도령이라는 존재는 내겐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연구실의 가난한 지식인이자 나와 연배가 비슷한 A씨 혹은 B씨에게 연달아 열을 올리고 있던 시절이라 펭귄도령을 말 잘통하는 학인이자 후배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서울 모 대학에 다니는 스물다섯 살난 제자에게 펭귄도령을 소개해주기로 약속한 것도 내 입장에서 볼 때 펭귄도령은 쳐다볼 순 있어도 올라가지는 못할 나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대중지성 2학기 끝난 직후 종로에서 펭귄도령을 만났다. 제자와 소개팅 날짜를 상의할 생각이었다. 헌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만나서 영화를 봤고 밥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맥주까지 마시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두주불사파와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얘길하던 습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긴장된 기운이 두사람 사이에 흐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뭔가 있었다. 펭귄도령이 여자 경험이 부족하고 소심한 성격이라 또래 여자들보다 나이 많은 나같은 아줌마를 편하게 느꼈을 것이고 밖에서 따로 만나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마구 일었다. 그 느낌은 정확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펭귄도령 눈에 무슨 콩깍지가 씌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나를 여자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제자 소개해줄 날짜를 고르고 있는 동안 그는 내 마음을 짐작하느라,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까 말까 고민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중이었다. 이쯤에서 집에 간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우물 밑바닥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툭 말을 던졌다. "우리 연애나 한번 할래요?" 연애나 하자니? 보이스카웃 대원에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자 어법이었지만 내겐 그림 속의 떡이 갑자기 테이블 앞의 현실적인 떡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입이 떡 벌어진 나는 제자와 소개팅 운운하던 조금전의 대화를 싹 뭉개고 5초만에 대답했다. "그거 좋지." 그리하여 나하곤 평생 상관없을 것 같았던 잘익은 숫총각(ㅋㅎ!)이 제 발로 내게 걸어와 스스로 후라이드 치킨이 되는 (은유의 표현에 따르자면) 로또 대박을 맞게 되었다. 내게 필요한 건 포크나 손가락 혹은 물수건이나 화장지 뿐이었다. 혹은 소화력 든든한 위장 같은. 

연애나 하자고 할 때 거절했어야 할까. 그게 어른답고 현실적으로 처신하는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정중히 거절하고 약속대로 제자를 소개해주었어야 할까.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보면 주인공들은 꼭 그렇게 자기 욕망을 누르고 효도를 하거나 제 몫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거나 뭐 그렇더라마는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기적이라 그런 일은 생각도 못한다. 펭귄도령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더라도 꼭 내가 따먹고 보내고 싶었다.ㅋ 그게 나라는 사람이고 이유는 없다. 나는 보이스카웃 대원 같은 그에게 긴장을 늦추고 릴랙스하는 법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펭귄도령 또한 보이스카웃 대원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 했으므로 우리가 만나지 못할 이유란 없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도저히 엮이지 않을 것 같았던 숫총각과 싱글맘은 그렇게해서 뗄레야뗄 수 없는 인연으로 엮이게 되었다. 인연의 실타래란 인위적이라기보단 운명적인 거라 백번 되돌려 생각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제는 여자랑 손도 제대로 안잡아본 숫총각을 어떻게 내 속도에 맞게 요리하느냐 였다. 나는 원래 맛있는 것을 미루거나 하는 '나중을 기약하는 일' 같은 짓을 잘 못한다. 욕구가 솟으면 즉석에서 해결하는 편이고 그래서 늘 충동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속전속결이 내 기질이다. 속궁합을 맞춰봐서 제대로 안맞으면 서로 정 들기 전에 빠이빠이 하는 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편이라, 연애하자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언제 궁합을 맞춰보는 게 좋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손 잡고 키스하고 모텔 가는 걸 하루에 다 해치워버려야지 홍홍...! 그러다가 문득 숫총각에게 기회를 줘야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소심한 숫총각이 용기를 내어 자기 욕망에 충실해지는 연습을 하도록 하는 게 그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 한번 참아보자. 이런 연애도 처음이니 안해본 짓도 한번 해보자.

펭귄도령이 달궈져서 빨랑 하자고 조를 때까지 한번 참아보자고 생각했다. 내 취향하곤 영 안맞았지만 어찌어찌해서 손잡고 키스하는 것 까진 펭귄도령의 속도에 맞춰 진행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나같은 아줌마를 여자로 느껴주는 것도 고맙고 이쁘고, 손잡아볼까 키스해볼까 초조해하는 숫총각을 바라보는 일도 낯설고 즐거웠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모텔에 가자는 말을 안했다. 고시원 앞에서 헤어지기 싫어 몸부림을 치면서도 같이 자자는 말을 안하는 것이다. 불면 터질 것 같으면서도 잘도 참았다. 역시나 보이스카웃 대원은 다르구나 싶었다. 맨정신에는 그 말이 안나오겠구나 싶어 술도 멕여봤지만 그의 인내심은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그래서 내식대로 직진했다. 왜 모텔 가자고 안해? 내가 안섹시한 거야? 보이스카웃 대원의 대답은 짐작대로였다.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고 어쩌고.
 

참나. 지켜주긴 뭘 지켜준다는 건지. 남녀가 뒤바껴도 유분수지. 하고는 싶은데 참는 게 옳은 것 같으니까 참는다는 말이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보이스카웃 대원 자신만 모르고 있다는 걸 본인은 알까. 하는 수 없이 믿는 도끼로 발등을 찍거나 보기 좋게 뒤통수를 때리는 수밖에.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고 그날도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가 싫어 버스가 끊길 때까지 숙대 안의 벤치에서 몸을 딱 붙안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찬스다 싶어 내가 말했다. "우리 모텔에 가자. 가서 잠만 자고 일어나서 자긴 곧바로 출근하면 되잖아. 다른 짓은 안할게. 자기도 나도 헤어지기 싫잖아." 내 말에 펭귄도령은 잠시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정말 잠만 잘 거죠?" 푸하하.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와서 못쓰겠네.ㅋ "진짜 잠만 잔다니까. 나 지금 피곤해 죽겠어.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질 거 같애." 
 

결국 낚시질에 걸려든 가련한 보이스카웃 대원은 잠만 잔다는 말에 깜빡 속아 모텔로 직행했고 그리고 그날밤 포크와 침바른 손가락으로 무장한 아줌마에게 30년간 지켜온 동정을 겁탈 당하고 말았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좌우상하 육탄공격에 맥없이 무너진 그는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야동의 여자들처럼 무방비 상태의 노예 혹은 먹잇감이 되느라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는 후문이 있음.ㅋ "너무해요!" 아침에 일어난 그의 입에서 쏟아진 원망의 말에 나는 그만 배꼽을 잡고 뒤집어졌다. "어차피 언젠가는 할 거 지금 앞당겨서 하는 게 뭐 어때서? 앞으로는 꼴릴 때마다 하는 거야. 30년 동안 충분히 참았으니까." 그리하여 꾹 참았다가 결혼하면 혹은 같이 살게 되면 동침하려던 숫총각의 계획은 완벽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계획할 게 따로 있지. 험!

그나제나 이 나이에 숫총각을 따먹어 보다니. 이러다가 회춘하는 거 아닌가 몰라. 이런 희귀한 경험을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게 너무 아까워서 결국은 여기다 털어놓고 말았지만 혹시 숫총각 따먹은 여성들을 위한 동호회 같은 거 없나? 있다면 당장 가입해서 신나게 뒷담화 까고 놀텐데. 사무실에서 이 글을 읽고 열패감에 젖을 펭귄도령아, 미안하다. 본인을 소재로 글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으니 이 정도 쪽팔림쯤은 스스로도 감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열 받으면 너도 확 불어버리든가.ㅋ
Posted by by 룰루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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