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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N

제가 만난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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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의 저녁 석양

그리고 밤을 보내고 아침의 해뜨는 동녂

모두 넋을 놓게 만드는 위대한 자연입니다.

 

님들은 어느 자연이 더 아름다우신지요?

 

우리는 매일을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의 미술관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오며 자연보다 더 순수한 아름다움을 나누는 사람들도 만나고는 합니다.

 

“신토불이”의 가수 배일호씨는

오래전 MBC 청백전 프로그램의

보조 진행자 신분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말이 좋아 보조 진행자이지 카메라에 잡히는 것도 없고

출연자들이 게임을 하다가 실수로 기구를 무너뜨리거나 하면

다음 출연자를 위해 제자리에 재설치를 하는등 막일을 하는 거였습니다.

 

아는 연줄이 없기에 일단 그렇게 방송국 문을 두두렸지만

세월만 갈뿐 하고 싶은 가수의 길을 멀고도 멀기만 합니다.

 

청백전 프로가 사라져 실업자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이후 KBS의 라디오쑈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시작전의

분위기 잡는 가수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또한 방송이 시작하면 방송진행중 자잘한 심부름등을 하며 날을 보냅니다.

출연자의 순서가 되면 알려주고 출연료도 나누어주고 하는 일들입니다.

 

조그마한 실수를 해도 막말을 듣고는 하던 배일호씨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KBS 전국노래자랑의 녹화를 돕는 일을 하게됩니다.

본방송 녹화가 시작되기전 이때도 분위기 띄우며 노래를 부르고는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십여년의 고생이 사라지고 배일호씨에게 서광이 찾아듬을

이때 까지만 해도 배일호씨는 전혀 알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담당 프로듀서가 홍순창이라는 분이였고

후에는 KBS 2-TV 연예파트 부장님으로 진급을 하신분입니다.

 

배일호씨는 워낙에 천성이 바지런한 분이고 이일을 놓치거나 하면

생계문제가 따르기에 묵묵히 굳은 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해나갔습니다.

 

당시 부인과 아이들 가족이 사는 집은

마포의 산꼭대기 단칸방이 배일호씨의 월세집이였습니다.

 

어느날 전국노래자랑 피디였던 홍순창씨가

느닷없이 배일호씨 집에가서 차한잔 하자고 요구합니다.

 

도저히 보여줄수 없는 허름한 집이였기에 각종 핑계를 대고 빠져 나가보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당장가자고 호통을 치기에 죽을맛으로 집으로 피디를 모시고 갑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꼭대기 집으로 가면서

홍순창씨는 너무 올라가기에 힘이 들어 아직 더 가냐? 하면

배일호씨로 부터 미안한 목소리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를 열번도 넘게 들었다 합니다.

 

집은 쪽문을 열면 부얶이 나오고

그부얶을 거쳐 작은문을 열고 고개를 바짝숙여야 들어가는 단칸방이였습니다.

 

시궁창냄새가 진동을 하는 부억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 앉으며

홍순창씨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합니다.

 

사람이 이런 곳에서도 사는 구나

이런 곳에서 살지만 언제나 구김 없이 그리 맑게 웃으며 일했구나....

 

그리고 몇달이 지난 지방 녹화날

스타 가수 한명이 조금 늦는다고 연락을 해왔고

 

홍순창씨는 매몰차게 너 오지마~ 너 무대에 올라갈 자리 없으니

그냥 서울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버럭 질러버리고

 

배일호씨에게 올라가 6.25 특집이니

녹슬은 기차길을 부르라고 명령하고 적당히 분장을 하여 무대에 올려버립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에 모두들 놀랬고 준비된 의상하나 없었기에 사양을 했지만

양복윗도리만 빌려입고 전국노래자랑 무대에서 초대가수 신분으로 노래를 하게됩니다.

 

아래바지는 낡은 작업복을 입었기에 카메라가 풀샷을 찍지 못하고

멀리서 찍거나 아니면 상체부분만 찍는 연출을 하여 녹화를 하였답니다.

 

난생처음 방송이라 두번이나 NG를 냈지만 결국 녹화를 마쳤고

배일호씨의 인생역전드라마가 시작이 된것입니다.

 

이후 레코드사까지 홍순창씨가 연결해주어 음반도 출반하게 되었고

이음반에 실린 노래가 “신토불이” 였던 것입니다.

 

다른 가수들은 일년에 한두번 출연하기도 쉽지 않은 전국노래자랑을

무수한 뒷말을 들으면서 홍순창씨는 한달에 두번이나 매달 출연을 시켜버렸고

특정 가수를 과다하게 출연시켰다는 이유로 방송국에서 문책을 받기 까지 합니다.

 

뒷돈을 엄청 받았다는 모함을 듣고는 했지만

귀를 막아버리고 막무가내로 밀어준 것입니다.

 

기어코 노래는 히트를 했고

고진감래의 결과를 화려하게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스타가 만들어 졌지만

홍순창씨는 배일호씨에게 거리를 두며 냉정했고 무엇하나 받은 것이 없었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만 행한 것이였고 뒷소리를 우려해 대가를 온전히 거부하였지만

배일호씨로서는 그간의 고마움을 전할길이 없어 마음이 무겁기만 했을 것입니다.

 

현직에서 잠시 물러나 한직으로 가게실때 말씀드렸답니다.

거래를 하자는 것이 아닌 고마움에 대한 사례를 하자는 것이니

저녁에 만나주는 것이 배일호씨에게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게 해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한식집에서 만남을 주선해준 적이 있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시간을 방송국에서 저는 피아노를 연주했답니다.

그때부터 연예계 분들과의 인연이 저에게는 있었답니다.

 

그래서 태국으로 이주해 오며 주중에는 저의일을 하고

주말에는 작은크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파 월텍까지 가서 좋은 전자피아노를 샀고

 

파타야 워킹스트릿 입구의 ZAP이라는 크럽에서

가끔 저의 피아노로 연주를 그곳 밴드들과 합주를 하기도 했답니다.

 

어느날 저의 피아노가 사라졌기에 놀라 밴드의 리더에게 물었더니

뭐라고 태국어로 한참 떠드는데 알아들을수 없었고 그렇게 피아노는 사라졌답니다^^

 

젊음의 시간을 여의도에서 보냈고

이제 떠나온 우리나라의 지난일들이 자주 생각이 나고는 합니다.

그래서 그중 아름다운 일들을 사실로만 글을 올려보고는 합니다.

 

제가 젊음을 보냈던 한국에서의 아름다움도 많았고

이제 6년으로 가고 있는 이곳 태국에서도 아름다운 추억들을 그간 만났지만

마무리 되지 못한 아픔과 상처가 남아 아직은 미완성으로 남아있기만 하답니다.

 

실패한 삶에는 아름다움이 찾아들수 없을 것이기에

저나 님들 모두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야 할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포기치 말고 희망을 꼭 껴안고 내일을 위해 말입니다.

 

교민님들 화이팅~!!!

 

 

*헌데 딸아이 사진은 글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왜 올리느냐고요?

 

저의 딸사진 올리는데 뭔 이유가 있남요^^

그래도 조금 미안해서 케익들 드시라고 케익대령하는 사진으로 골랐어요^^

 

 

 

 

 

사진 1435.jpg (1.8Mb) (5)
작성자: 디펀 , 작성일 : , 수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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