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착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목적지로 향하는 시간이 더 좋았다.
내가 사는 곳이 지긋지긋해 도망치듯 버스에 올랐지만
어디든지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쉽게 깨달았다.
터미널, 앞의 사장 통, 여관 골목,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
남, 녀, 노, 소, 그들이 떠는 소리,
전화기 부스에 줄 서 사연을 읊는 사람들, 연인들, 양아치들,
착한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이 뒤엉켜 구분되지 않은 곳.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종착지는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저 벗어난다다는 의미,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기적으로 그렇게 천변을 떠났다가 돌아와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나쁜 피 / 김이설